출처=셔터스톡
보가트 스트리트 49번지 빌딩. 브루클린 부시윅에 위치한 L선 지하철 모건 애비뉴역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이 곳의 벽면은 주변의 여타 용도변경 창고들처럼 그래피티(Graffiti)와 스티커로 뒤덮여 있었다. 주민들이 거주하는 빌딩이었지만, 경비실도 없었고 출입관리도 허술했다. 여기서 방 한 칸이 2016년 내가 입사할 당시 컨센시스(ConsenSys)의 사무실이었다. 강건너 맨해튼의 반짝거리는 오피스 타워들과 비교하면 허름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제 컨센시스를 생각하면 누구나 이 빌딩의 외관을 떠올린다. 심지어 브루클린으로 대거 이전한 '암호화폐 업체들의 세계'라는 블룸버그 방송 프로그램의 대표 이미지로 등장할 만큼 유명해졌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컨센시스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일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여기서 웹3의 부상을 눈앞에서 똑똑히 지켜보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야 할 막대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 이더리움을 구축하던 빌더들에게 마케팅은 핵심 스킬이 아니었다. 처음 보가트 49번지의 분위기는 회사라기보단 학교에 가까웠다. 동료들은 대부분 컴퓨터 과학자, 엔지니어, 개발자들이었으며, 경영전문가 몇 명이 전부였다. 새로 온 동료들도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똑똑했다. 그 중에 최고 대학교 출신 기술 전공자들도 있었고, 독학으로 코딩전문가나 해커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동료들 사이에 껴서 일하게 될 줄 몰랐다.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암호화폐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고, 학부 졸업 후엔 아리아나 허핑턴이 이끄는 허핑턴포스트에 입사했다. 허핑턴포스트는 처음부터 디지털 매체로 시작한 혁신적인 미디어로, 광고 매출을 통한 온라인 컨텐츠 제작 및 수익창출을 선도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탐사 저널리즘 전문 기자들에 투자하는 대신(나중엔 투자하긴 했지만), 허핑턴포스트 기자들은 다른 뉴스 채널이 보도하는 기사를 요약해서 내보내고 기사원문 링크를 다는 방식을 취했다. 원문에다가 SNS에 먹힐만한 헤드라인과 자극적인 사진을 붙여서 내보내다 보니 SNS 피드에 더 자주 등장하게 됐고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이목을 끌면서 광고매출로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다. '통합(aggregation)'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마케팅 모델은 초기 투자 비용 대비 높은 수익이 가능했다.
당시만해도 웹 채널만 운영하는 미디어가 없었다. 기존 인쇄출판 미디어들이 이제 막 디지털 전략을 모색하던 상황이었다.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SNS에 컨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온라인 퍼블리싱을 하면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깨닫던 시점이었다. '드러지 리포트(The Drudge Report)'가 최초의 웹 전용 미디어로 통합 마케팅 모델 개념을 만들었다면, 허핑턴포스트는 그보다 조금 늦게 나오긴 했지만 이 마케팅 모델을 크게 확장시킨 회사라 할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블로그 플랫폼에 사용자 생성 컨텐츠로 혁신을 일으키기도 했다. 블로거들은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에 기고하는 사실 자체를 하나의 특권으로 여겼다. 블로거들은 돈은 못 받을지 언정 허핑턴포스트에 실리면 미디어 노출이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밑지는 거래에 서명했다. 그들은 유명세를 얻거나 악명을 얻어 사업을 홍보하거나 사회적 가치를 도모하는데 대중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블로그 포스팅을 읽지 않았고, 읽히는 포스팅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허핑턴포스트 블로그에 블로거들은 많았고, 그만큼 기회도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용자 트래픽은 극소수 블로그에 집중됐다. 이렇게 흥행한 블로그들은 초기 투자비용 없이 거의 100% 수익창출이 가능했다.
"웹 3 마케팅에 정해진 공식은 없다"
이러한 방식이 허핑턴포스트의 가장 효과적인 수입원이 아니었나 싶다. 2012년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기업 AOL이 허핑턴포스트를 3억1500만 달러에 인수했는데, 허핑턴포스트는 지금까지도 최초이자 최고로 성공한 디지털 미디어 엑싯 사례로 평가된다. 이 때 돈을 받지 못한 블로거들은 허핑턴포스트가 성장하기까지 자신들의 공이 크다며 AO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지분을 요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즉각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에게 컨텐츠와 데이터를 수집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도 크리에이터들에게 돌려주지 않아도 되며 이러한 꼼수가 합법'이라는 결론은 디지털 미디어와 SNS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지금까지 이 방식이 웹2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웹3는 법원의 개입 없이도 크리에이터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대안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전복시킨다.
나는 허핑턴포스트 특별 프로젝트 에디터로 일하면서 디지털 환경에서 온라인 저널리즘 생성을 목격했고, 사설과 블로그의 생리를 알게 되었다. 일부 웹3 관계자들은 웹2 비즈니스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다. 물론 그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비판보다는 해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떻게 하면 좀 더 크리에이터 친화적 대안을 만들어 기존 모델에 대항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보상을 받지 못한 블로거들을 생각하면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나는 개척자이자 혁신가였던 아리아나 허핑턴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허핑턴을 보고 배웠고 나 또한 언젠가 그녀처럼 창업하겠다고 생각했다.
2년 후 나는 미디어 사업 모델을 혁신해 크리에이터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제공할 기회를 찾았고, 그래서 ‘슬랜트(Slant)’라는 뉴스 플랫폼을 공동 설립했다. 우리는 기자와 언론학부 학생들을 초대해 슬랜프 플랫폼 블로그에 기고를 의뢰했고, 작성자 70% - 회사 30% 비율로 광고 수익을 배분했다. 각자가 따로 기고하고 플랫폼은 개입하지 않는 ‘미디엄(Medium)’같은 매체와는 다르게 슬랜트는 크리에이터들이 서로 긴밀하게 협업하고 컨텐츠를 잘 편집, 정리하고 배포할 수 있도록 컨텐츠 마케팅도 가르쳐줬다.
당시 독자들과 뉴스 미디어는 학부생 기자들이 직접 쓴 1인청 관점 기사에 매료됐다. 특히 학내 성폭력 문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흑인 인권 문제(Black Lives Matter)가 큰 관심을 끌었다. 좋은 타이밍에 우수한 필진 덕분에 일부 기사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 일부 기사의 경우 건 당 수천 달러의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의 기사는 조회수가 낮거나 거의 없었고, 그럼에도 광고 수입의 70%를 지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1달러, 심지어 1센트까지 쪼개서 수입을 나눠줘야 했다. 슬랜트는 트랜잭션 활성화를 위해 3자 지급처리 서비스를 이용했는데 각 트랜잭션 당 부과 수수료 때문에 인기가 없는 컨텐츠에서는 손해를 보는 상황이었다. 우리의 사업 모델은 출범 직후 4백만 이상의 월 조회수라는 성과를 얻으며 이론적으로는 수익을 내고 있었지만, 실제론 지급 처리 수수료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었다. 크리에이터 보상을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설계하다 보니 탈중앙화 마이크로 지급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찾게 되었고, 이는 웹3가 태동하기도 이전에 하던 고민이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약간 진화했을 뿐 웹 2 스타일의 결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지급결제 문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살던 뉴욕에서는 수많은 기술 밋업이 있었다. 나는 규모는 작지만 성장하는 플랫폼의 공동창업자로서 밋업에 참가해 동료 창업자들을 만나 교류했다. 그러다가 2015년 조셉 루빈, 샘 카사트, 앤드류 키스, 크리스챤 룬드퀴스트 등 초기 이더리움 팀을 만나게 됐다. 코드 원천은 공개되어 있지만, 컴퓨터 공학 학위가 없던 내겐 이더리움 가상 머신의 내부 작동 원리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더리움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란 사실만큼은 분명했다. 나의 미디어 마케팅 기술로 그들이 만든 기술을 자체 검증할 순 없었지만, 사람을 검증할 순 있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그들은 훌륭했다.
이더리움은 내 경우를 비롯해 웹2의 한계로 인한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해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업모델과 가치창출수단을 창조할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 방식이 논리적이고 실용적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에 정신이 혼미했지만, 이더리움 전문가들이 웹1기반의 ‘소통의 인터넷’에서 발전된 개념인 ‘가치의 인터넷’을 구축 중임을 알 수 있었다. 웹1이 유례없는 규모로 전세계 정보의 흐름과 교환을 촉진시켰다면, 웹3는 가치의 흐름과 교환을 촉진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돈은 가치를 표현하는 보편적 수단이긴 하나,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돈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당시 우리는 이러한 움직임을 ‘크립토’로 불렀다. 그러나, 암호화폐나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포함한 블록체인 기반 토큰 등 금융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온갖 종류의 가치가 포착되고 자유롭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웹3’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 크립토는 웹3 중에서도 금융에 국한된 하위 범주로 인식된다. 크립토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갔고, 광고에 의존한 미디어 산업 모델의 위험은 점점 뚜렷해 졌다. 2016년 나는 미디어 스타트업을 엑싯하고 최고마케팅책임자로 컨센시스에 합류했다. 그리고 여기서 최초의 웹3 마케터가 되었다.
대부분의 업계 사람들은 컨센시스가 최초로 공식 마케팅 책임자를 채용했다는 소식에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코드를 짜느라 바빴고, 소프트웨어 역사상, 커리어상 가장 중요한 업적을 세우기 위해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흥분을 애써 누르고 있었지만, 뭔가 큰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부는 컨센시스가 마케팅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시했다. 웹3 인센티브 기반 경제 모델의 요체는 셀프 마케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웹2에서 ‘마케팅’은 진정성 부재를 포장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마케팅’이란 단어는 아무도 클릭하지 않는 짜증나는 페이스북 광고, 비타민 워터를 파는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 연예인 카다시안 패밀리에 대한 과장된 기사와 제목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진지한 기술주의자들에게 마케팅은 필요 없는 물건을 사게 만드는 사기술과 같아서 선보다는 악의 의미에 가깝다. 아무도 마케팅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광고 없는 컨텐츠에 기꺼이 구독료를 내지 않는가. 메타마스크(MetaMask), 인퓨라(Infura), 트러플(Truffle) 등 최초의 웹3 툴의 타겟 사용자인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특히 광고를 혐오한다. 그들은 오히려 스스로 오픈소스 코드 베이스를 찾아보고 자신만의 결론을 내린다. 문화적으로도 웹2 스타일 마케팅은 해커나 학자들과는 결이 안 맞다.
컨센시스의 2016년 목표는 기본 툴과 탈중앙앱(디앱) 구축을 통해 개발자들이 이더리움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더리움 활용이 쉬워지면 개발자들이 웹3 토대를 혁신하고 상상만 하던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게 되어 이더리움 생태계의 성장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컨센시스는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시장에 반응하고자, 흩어진 팀을 한데 모아 자금을 공유하고 법적 인프라 및 지원 인프라를 일원화했다. 이렇게 팀들을 동일한 인센티브 체계 하에 모음으로써, 상호경쟁이 아닌 협업을 통해 동일한 문제를 고민하고 중요한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었다. 또한 업무중복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초기 컨센시스는 그야말로 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무대였다. 전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탈중앙 블록체인 기술 전문가가 모두 컨센시스나 이더리움 재단에 있었다. 이들은 이더리움 생태계 발전에 필요하다면 공식 직함이나 역할 없이도 여러 다양한 프로젝트에 자신들의 역량을 제공하고 기여했다.
컨센시스는 인재, 문화, 협력,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에너지 덕분에 기초 이더리움 표준, 툴, 디앱을 구축할 수 있었고 그 중 다수가 오늘날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그 중엔 오리지널 이더리움 애플리케이션 구축 프레임워크인 ‘트러플’, 개발자들이 디앱 배포 시 사용하는 이더리움 인프라인 ‘인퓨라,’ 많은 유저가 사용하고 있는 자기주권 신원 웹3 지갑인 ‘메타마스크,’ 등이 포함되며, ERC-20 토큰 표준에도 기여했다.
이러한 핵심 툴 이외에도 다양한 산업 및 사례에 적용할 목적으로 팀을 모아 디앱 개발에 힘썼다. 그 중엔 최초의 음원 NFT를 제작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웹3 음악 디앱 ‘우조(Ujo)’, 탈중앙 영상 및 영화 제작 플랫폼 ‘싱귤러DTV(SingularDTV)’, 다른 디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예측 시장 플랫폼 ‘노시스(Gnosis),’ 에너지사용 효율 제고 및 비용 감소를 위한 시스템 ‘그리드플러스(Grid+)’ 등 다양한 디앱이 포함된다.
일부 성공하는 프로젝트도 있지만, 실패해서 팀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회사 관련 프로젝트와 사람들을 모아둔 컨센시스 ‘메쉬(그물망)’의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된다. 스타트업의 90%가 실패한다는 말이 맞다면 컨센시스는 스타트업 평균보단 나은 편이다. 그러나 개별 프로젝트의 성공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마케터로서 내가 할 일은 신생 스타트업들이 동력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도 개별 기업들을 이더리움 적용사례로 홍보하는 일이다.
웹3에 정해진 마케팅 공식은 없다. 나는 컨센시스의 최초 공식 마케팅 책임자로서 동료들, 특히, 회사가 마케팅 부서를 만든다는 계획에 적극 찬성한 분들로부터 ‘웹2 방식은 실패한다’는 점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는 전통적인 마케팅 담당자 출신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틀에 가두지도 않았다. 허핑턴포스트와 슬랜트 시절, 온라인 컨텐츠 배포, 관심도 제고, 여론 형성 및 행동 전환 유도 등 중요한 방법들을 흡수, 터득했다. SNS 마케팅이나 인플루언서 마케팅에 문외한도 아니었다. 또한 사람들을 모으는 오프라인 행사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가장 도움이 된 건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했던 경험이다. 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사업을 시작할 때, 시간이 지나면서 고객의 선호에 맞춰 사업을 다듬어야 할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부분은 대부분 웹3에 관한 사항이었다. 웹3라는 토대를 모르고 웹3 마케팅 기획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품을 팔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이더리움 관련 서적을 읽었고, 점심이나 하루 중 고객이 가장 붐비지 않는 ‘해피 아워’에 바쁜 동료들을 불러서 정보를 물어봤다. 과장이나 미끼 없이 이더리움을 마케팅 하겠다는 나의 의지를 확인한 동료들은 조심스럽게 나의 마케팅 스킬이 이더리움의 비전 달성에 쓰일 수 있겠다고 보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나의 목표는 이더리움 상용화 및 개인 대상 웹3 출시였다. 이더리움 공동창업자 겸 컨센서스 창업자 조셉 루빈 CEO와 첫 인터뷰에서 나는 이더리움을 스타벅스나 메이저리그 야구처럼 누구나 알 수 있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더리움은 지축을 흔들 만큼 엄청난 기술이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모든 것들 중 가장 흥미로운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잘만 설명할 수 있다면,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질 법하다. 이더리움 상용화는 초기 컨센시스의 조용한 연구자들과 반체제 해커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됐던 아이디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셉은 나에게 마케팅을 맡겼다. 그가 애초에 컨센시스를 설립한 이유도 이더리움 생태계가 발전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쓰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25살에 불과했지만, 조셉은 나를 한 번 믿고 맡겨 보겠다고 했다. 딱 봐도 나는 이더리움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세계 최고의 마케터들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고 이따금씩 해킹 당하는 모호한 프로젝트를 홍보하겠다고 나설 일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가 나를 채용한 건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케팅의 중요성을 입증하기까지 나는 신입직원이나 예산 등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초기 이더리움 전도사이자 이더리움 사업개발을 이끌던 영업전문가 앤드류 키스 덕분에 마케팅의 위력을 증명할 기회를 포착했다. 한 번은 이더리움 재단이 주최하는 이더리움 개발자 및 지지자들의 연례회의인 제2차 데브콘(DevCon) 행사 참석차 상하이 출장을 갔다. 그 때 따뜻하고 사교적인 그는 나를 상하이의 한 중식당으로 초대했고, 그가 동료들과 준비중이던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얼라이언스(EEA)’ 프로젝트에 대해 속사포로 이야기했다. 그 몇 달 전 앤드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이더리움에 대해 말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두 임원, 말레이 그레이와 요크 로드 3세는 이더리움 기술 가능성에 감탄했고 구체적인 기업 적용 사례에 대해 궁금해했다. 앤드류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관심에 힘입어 이더리움을 실험하고 싶어하는 우량 기업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영업을 했다.
그 결과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JP모건 체이스, 산탄데르, BNY 멜론, 엑센츄어를 비롯한 많은 기업들과 스타트업, 학계 그룹이 컨센시스와 실무그룹 파트너십을 맺기로 합의했다. 컨센시스의 목표는 이더리움의 기업활용표준 정립이다. 이는 꼭 이더리움 때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시도였다.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지 않았다면 서로 경쟁하고 최소한의 정보조차 공개를 꺼릴 회사들이 갑자기 힘을 합쳐 공유 리소스를 구축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웹3 경제 모델은 종종 협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한다. 우리의 파트너사들은 경쟁이 치열하다고 소문난 금융, 기업용 소프트웨어,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도 협업을 장려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그 즈음, 나는 웹3가 마케팅에 있어 엄청난 기회가 될 것임을 확신했다. 2016년 여름, 사람들이 이더리움을 검색하면 십대의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에 대한 결과가 대부분이었다. 컴퓨터 과학자들은 부테린을 비롯한 최초 이더리움 기술팀에 큰 인상을 받았지만, 이런 중요한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기업 임원들에게 이더리움을 홍보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더리움 사전 투자자들 대부분은 개인이나 소규모 펀드였다. 알 만한 브랜드나 유명 투자자는 투자하지 않았던 터라 이더리움은 아직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틈새시장 같았다.
우량 기업들은 소프트웨어를 고르거나 파트너십을 맺을 때 꼼꼼하게 따지는 편인데 당시는 이더리움의 장점을 검증해 줄 만한 제3자 기관이 없었는데다 기업의 의사결정자들은 기본적으로 크립토를 불신했다. 특히 각종 불법 물품을 암호화폐로 거래한 웹사이트 ‘실크로드’ 이후, 가장 잘 알려진 블록체인 네트워크 비트코인 마저 인터넷 지하세계 마약밀매와 폭력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더리움은 마약밀매상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니었다. ‘가치의 인터넷’을 생성할 새로운 웹 아키텍쳐였다. 믿음이 가는 기업들이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지지한다면 각종 비즈니스들이 이더리움의 이점을 인식하고,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인 시각을 거둬들이고 흐름에 동참할 것으로 보였다.
그 후 몇 달에 걸쳐 앤드류와 다른 동료들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우리는 언론을 이용하면 더 다오(The DAO) 해킹 사건으로 굳어진 부정적 내러티브를 바꿀 수 있다고 보았다. 기업들은 이더리움의 구조적 건전성과 해킹 사건 재발 방지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던 터였다.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연합(EEA)에 관여한 유명 브랜드와 함께 우리는 이더리움이 무엇인지, 왜 이더리움을 알아야 하는지 주요 언론 매체에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수백만 명이 처음으로 새로운 맥락에서 이더리움을 접하게 된 것이다.
2017년 2월 말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로이터 통신은 물론이고 수천개의 소규모 매체에서도 이더리움 기사가 실렸다. 앤드류와 나는 기자들에게 이더리움과 EEA를 설명하며 기사를 확보했고, 주요 파트너 기업과는 기자회견과 인터뷰 일정을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파트너 회사 홍보팀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계획이 통했다. 결전의 날 이후 이더리움을 검색하면 비탈릭 부테린도 나왔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그레이와 로드, 산탄데르의 훌리오 파우라, JP모건의 앰버 밸데의 이야기도 나왔다. 여러 기업 사례를 모아 소개한 시도도 훌륭했지만, 아직 낯설 수 있는 ‘컨센시스’란 이름이 많은 기사에 등장하면서 확실히 각인되는 효과도 있었다.
투자자들이 읽는 경제신문 기사에 이더리움이 유명 기술기업 및 금융기업과 함께 헤드라인으로 등장하자, ETH(이더) 토큰으로 자금이 몰려들었다. 이더리움을 위한 기업표준은 원래 이더를 활용하지 않았다. 기업들이 암호화폐 토큰이 불필요한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더 토큰으로 자금이 몰려들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투자자 신뢰를 쌓은 우량 기업들과 이더리움 간의 파트너십 발표 이후 이더 가격이 20달러 이상으로 급등한 것이다. 2017년 5월 이더리얼 써밋(Ethereal Summit) 때는 이더 가격이 100달러를 넘겼는데, 이는 암호화폐 역사상 가장 빠른 상승이었다.
조셉은 (홍일점 마케팅 부서의 유일한 직원인) 내가 올린 성과에 만족했다. 앤드류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마케팅의 중요성을 증명했으니 말이다. 조셉이 기뻐했던 이유는 단지 컨센시스의 브랜드 인지도 상승이나 보유하고 있던 이더의 가격 상승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더리움 생태계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 효과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늘면 이더리움 프로젝트에 펀딩이 는다는 뜻이고, 더 많은 기업가들이 플랫폼 구축에 자금을 유치한다는 뜻이고, 해당 프로젝트들에 더 많은 개발자들이 고용되어 코드 베이스를 개발한다는 뜻이다.
출처=셔터스톡
컨센시스의 성공 지표는 이더 가격이 아니라 개발자 수다. 이더리움 상에서 더 많은 개발자들이 솔리디티, LLL 등의 개발 언어로 개발하면, 많은 사람들이 쓰는 디앱 히트작을 개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개발자들이 2017년 웹3를 시작한 목적은 EEA출범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 은행 산업을 뒤흔들고 대기업 유통구조의 중간단계를 없애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러나 EEA 출범은 ‘성장의 플라이휠’이 되어, 수많은 개발자들을 이더리움으로 이끄는 효과를 가져왔다 (플라이휠은 이렇게 연상하면 쉽다. 중간 축에 무거운 바퀴가 있는데, 처음엔 돌리는데 어마어마한 힘이 들지만 조금 지나면 바퀴의 무게로 점점 더 속도가 붙어서 스스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웹3 사업에서 모멘텀을 만들었던 내용을 다룰 때 다시 한 번 이 플라이휠 이미지를 설명하겠다.)
그 후 컨센시스 마케팅 팀은 마케터 두 명을 채용했다. 그 둘은 매튜 일스, 엘리스 랜섬인데, 매튜는 기존 웹2 마케팅 전문가였고 부인과 함께 마케팅 에이전시를 창업해서 M. Gemi 등 유명 리테일 브랜드와 제너럴 어셈블리와 같은 웹2 기업을 성공적으로 마케팅 했다. 매튜 부부는 제너럴 어셈블리의 디지털 마케팅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나는 전통적인 마케팅보다는 언론미디어 출신이었기 때문에 훌륭한 마케팅 전문가와 같이 일하고 싶었다. 매튜는 디지털 마케팅 우수 사례를 분석해 수천 명을 대상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게다가 사고가 유연하고 창의적이었다. 그는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웹2 마케팅을 그대로 웹3에 적용하는 대신 새로운 구조와 절차, 풍부한 지식을 들여왔다.
엘리스 또한 마케팅 팀에 큰 보탬이 됐다. 그녀는 부동산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핀테크 마케팅 담당자였다(핀테크는 웹3 적용 뿐만 아니라 금융서비스를 혁신하는 기술 변화를 총칭하는 말이다). 나처럼 학부 졸업 후 직장 경험은 몇 년 안되었지만, 이더리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수개월 동안 끈질기게 컨센시스에 구직 문의를 해왔다. 나는 그녀를 만나자마자 복잡한 핀테크 아이디어를 명료한 메시지로 풀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훌륭한 커뮤니케이터임을 알아보았다. 면접에서 매튜와 나는 ‘당신은 잘 알지만 다른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하는 복잡한 문제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49번지 빌딩의 협소한 미팅 룸에서 앨리스는 2008년 금융위기와 서브프라임 모기지, 그리고 그 위기가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시스템 발명으로 이어진 내력을 화이트보드에 써가며 막힘 없이 설명해냈다.
매튜와 앨리스의 합류로 최초의 웹3 마케팅팀이 꾸려졌다. 4년이 돼가는 지금 우리 마케팅팀은 대외홍보, 컨텐츠 마케팅, SNS, 커뮤니티 마케팅, 그로스 마케팅, 시각 디자인, 프로덕트 마케팅 전문가를 포함 80명으로 늘어났다. 엔지니어 출신은 아니지만, 컨센시스의 기술 전문가 동료들로부터 열심히 배우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웹3 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다. 우리 팀은 웹2의 선진 마케팅 사례를 참고하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새롭고 신선한 웹3 마케팅을 기획하기도 한다. 우리가 세상에 내놓는 기술은 일부 그룹의 임의적인 의사결정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에 따른 투명한 거버넌스를 도모한다.
그러나 시장에 적용시키는 프로세스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웹2에서 우수인재를 영입해 웹3에서 성공적으로 개발훈련을 해왔다. 카라 마일리와 제임스 벡은 홍보, 애버리 어윈, 에버렛 머지는 컨텐츠 마케팅, 캔월 제핸은 커뮤니티 마케팅, 데이비드 우와 딘 라마단은 그로스 마케팅, 엘레인 젤비, 브렛 리, 카밀라 맥퍼랜드는 프로덕트 마케팅 등 우수한 인재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키워갔다. 컨센시스를 떠나더라도 대부분은 웹3에서 뚜렷한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세로토닌’이라는 웹3 마케팅 에이전시를 설립할 때 카밀라, 엘리스, 카라, 에버렛이 함께 했으며, 매튜와는 2020년에 프로덕트 스튜디오를 공동 창업했다.
"웹3 프로젝트는 결국 자체 운영과 마케팅이 가능해질 것"
첫번째 웹3 마케팅 팀에서 초기 디앱과 토큰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출시하며 몇 년 간 경험을 쌓은 이후, 레이어1, 레이어2, 웹3 유틸리티, DAO(탈중앙화 자율조직), 디파이(DeFi, 탈중앙금융) 프로토콜, NFT(대체불가능토큰), 메타버스 가상세계 등 차세대 웹3 프로젝트에 우리의 성공사례를 접목시켜 보기로 했다. 세로토닌 창업 후에는 웹3 트랜스포메이션에 대한 전문성을 개발하고, ‘웹2.5’(기존 웹2 기업이 웹3 사업모델에 점진적으로 적응하는 프로세스)라는 용어를 만드는 등 웹3 마케팅을 고도화하고 업계와 함께 발전해갔다.
다른 마케터들이 이제 막 웹3에 뛰어드는 데 비해, 세로토닌은 일찍 시작한 덕분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웹3의 기반토대, 커뮤니티 역사, 고유한 특성에 누구보다 익숙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케터들의 웹3 신규진입을 적극 환영한다. 웹2는 한정된 사업을 두고 마케팅 에이전시와 마케터가 경쟁해야 하는 환경이지만, 웹3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 중이며 네트워크 효과로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더 많은 개발자와 유저가 유입되면 다 같이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직 초기 단계인 웹3 산업을 발전시키고 서로 배움을 지속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사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들 중에서도 웹3 토대를 혁신하고 새롭게 표준을 정립하고 계실 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웹3 커뮤니티는 디스코드나 텔레그램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모인 인센티브 기반 그룹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룹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팀,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토큰이나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 디앱이나 프로토콜 유저를 포함한다. 이러한 그룹 분류도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가령, 커뮤니티의 유저가 프로젝트의 오픈 소스 코드 베이스에 기여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으면, 풀타임 팀에 속한 멤버는 이러한 유저를 고정 팀 동료로 볼 수도 있다. 커뮤니티 내 토큰이나 지분 보유자가 프로덕트 유저가 되기도 하고 유저가 투자를 결정할 수도 있다. 커뮤니티는 보통 프로젝트의 목표를 넘어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활발한 커뮤니티는 멤버들이 함께 놀고 일하는 디지털 사교 클럽과 같은 모습이다.
커뮤니티는 지속적인 참여와 신규 프로덕트 구매 전환이 가능한 잠재고객 풀을 제공한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성장하면 고용된 마케터와 마케팅 스킬을 갖춘 커뮤니티 멤버간 역할 구분은 사라지게 된다. 프로젝트가 코드에 기여하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초대하듯, 커뮤니티도 마케팅 스킬을 갖춘 멤버를 채용하고 보상을 지급하여, 커뮤니티 운영, 컨텐츠 생성, 시각 디자인, SNS 관리, 오프라인 밋업 행사 주최, 앰버서더나 추천 프로그램 등을 스스로 진행할 수 있다. 웹3 프로젝트가 높은 수준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커뮤니티에서 전문 마케터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만 있다면, 기여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면서도 소수의 직원과 적은 지원 경비만으로 더 효과적인 아이디어 도출과 실행이 가능해진다.
웹3 마케팅은 간단히 말해 고객(유저)과 선호하는 상품 서비스를 연결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잠재 고객들에게 상품 서비스를 인식시키는 것으로 시작한다. 신규 프로덕트에 대한 수요를 자극해야 마케팅을 성공시킬 수 있는데, 이는 종종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대상 고객과 상품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다.
이러한 이해가 선행된 마케터들은 발견-참여-사용-유지 단계로 잠재 고객을 이끄는 일련의 과정인 ‘마케팅 퍼널’을 구축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웹3 마케터들은 신규 잠재고객을 커뮤니티로 초대해 발견 단계에서 참여 단계로 전환시키려 한다.
일반적으로 웹3 커뮤니티는 디스코드나 텔레그램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모인 인센티브 기반 그룹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룹은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팀, 프로젝트에서 발행한 토큰이나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 디앱이나 프로토콜 유저를 포함한다. 이러한 그룹 분류도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가령, 커뮤니티의 유저가 프로젝트의 오픈 소스 코드 베이스에 기여하고 금전적 보상을 받으면, 풀타임 팀에 속한 멤버는 이러한 유저를 고정 팀 동료로 볼 수도 있다. 커뮤니티 내 토큰이나 지분 보유자가 프로덕트를 유저가 되기도 하고 유저가 투자를 결정할 수도 있다. 커뮤니티는 보통 프로젝트의 목표를 넘어 가치와 이해관계를 공유한다. 활발한 커뮤니티는 멤버들이 함께 놀고 일하는 디지털 사교 클럽과 같은 모습이다.
커뮤니티는 지속적인 참여와 신규 프로덕트 구매 전환이 가능한 잠재고객 풀을 제공한다. 그러나 커뮤니티가 성장하면 고용된 마케터와 마케팅 스킬을 갖춘 커뮤니티 멤버간 역할 구분은 사라지게 된다. 프로젝트가 코드에 기여하는 개발자 커뮤니티를 초대하듯, 커뮤니티도 마케팅 스킬을 갖춘 멤버를 채용하고 보상을 지급하여, 커뮤니티 운영, 컨텐츠 생성, 시각 디자인, SNS 관리, 오프라인 밋업 행사 주최, 앰버서더나 추천 프로그램 등을 스스로 진행할 수 있다. 웹3 프로젝트가 높은 수준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커뮤니티에서 전문 마케터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할 수만 있다면, 기여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면서도 소수의 직원과 적은 지원 경비만으로 더 효과적인 아이디어 도출과 실행이 가능해진다.
웹3 프로젝트는 결국 자체 운영과 마케팅이 가능해질 것이다. 충분히 건강한 커뮤니티라면, 정규 채용이나 법적장치 없이도 웹3 프로젝트를 통해 탈중앙화로 전진할 수 있다 (결국 채용이나 법적 장치는 필요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마케터들은 웹3 프로젝트를 맡은 첫날부터 자체 마케팅 시스템 설계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실제 자체 마케팅 시스템 운영까지는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커뮤니티가 주요 기능 운영을 인센티브 구조에 맡기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프로젝트를 통해 프로덕트를 환기시키고 유저를 멤버로 참여시키는 일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야 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는 최초 모멘텀을 생성 방법과 이를 자체 마케팅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프로세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쓸 수 있는 특정 마케팅 전략에 대해 다뤄보겠다.
아만다 카사트는 웹3 마케팅 회사 겸 프로덕트 스튜디오 ‘세로토닌(Serotonini)'을 설립한 CEO이며 세로토닌에서 분사한 NFT 커머스 통합솔루션 '모히토(Mojito)'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저서 ‘웹3 마케팅’에서 암호화폐 업계를 이끄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세상에 나오는지 공개했다.
원문: 김가영 번역, 선소미 코인데스크 코리아 편집
출처 https://www.coindesk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9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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